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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무어의 기일

모조 2021. 2. 8. 16:37

그제 2월 6일이 게리무어(Gary Moore)의 기일이라고 해서 그의 음악을 들었다.

생전의 게리무어는 나에게 있어서 '기타 잘 치고 음악도 좋지만 내 취향은 아닌 사람'에 속한 뮤지션이었다. 6070을 풍미한 소위 영미권 레전드들의 '음악적 중용의 미덕'에 비해 그의 음악과 연주에 드러나는 너무나도 직선적인 감정의 표출이 부담스러웠다. 또, 그래서 그의 음악이 '한국인이 사랑하는 팝송'일 수밖에 없다며 살짝 비하하는 마음도 가졌었다.

 

이렇게 고해성사를 하는 이유는, 나이가 든 지금 와서 그의 음악을 다시 들으며 '그는 그저 자신의 음악을 열심히 한 것 뿐'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씬리지(Thin Lizzy)를 거친 기타리스트로 이전엔 퓨전재즈록을 했었고 80년대엔 헤비메탈/하드로커였으며 이후엔 '뜬금없이(라고 생각되었던)' 블루스로 전향하기도 했다. 얼핏 이 음악 저 음악 기웃거린 걸로 보일 수 있지만 결국 그는 '이런저런 장르의 형식을 빌어 자신을 음악을 해 나간 싱어송라이터였다는 생각이다.

 

 

 

처음 사서 들었던 게리무어의 앨범이 <Corridors Of Power>였기에 그의 음악을 듣고싶을 때 가장 먼저 손이 간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82년에 나온 앨범이니 아마도 예음에서 나온 카세트를 구입한 건 이듬해쯤이었을 거다. 이전까지 라디오에서 들어왔던 "Parisienne Walkaways"의 선입견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드한 앨범이어서 무척 좋아했었다. 한창 하드록/헤비메탈이 절정기를 맞이하던 그 시절, 호쾌한 첫 곡 "Take Me For A Loser"에서부터 무척 만족스러웠던(사기 잘했다, 돈 아깝지 않다) 기억. 폴로저스(Paul Rodgers)의 밴드 프리(Free)의 곡을 커버한 "Wishing Well"과 아름다운 메탈발라드 "Always Gonna Love You"도 워크맨으로 처음 이 앨범을 듣던 안암동의 외가집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 소환곡이다. 엄청난 대작이라 느꼈던 "End Of The World"의 보컬이 크림(Cream)의 잭브루스(Jack Bruce)라는 걸 알게 된 건 수 년이 지난 후였던 것 같다. 

 

'헤비메탈 뮤지션 게리무어'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린 이 앨범 이후 <Still Got The Blues>까지 약 8년 동안 거의 매년 역작들을 발표했지만 역시 게리무어의 음악을 듣고싶다면 이 앨범을 첫 음반으로 추천하고싶다. 아무래도 나의 게리무어는 강렬한 빨간 색의 스트라토캐스터를 든 짧은 머리의 하드로커이기에.

 

 

 

- 당시 한창 구해 보던 일본 잡지 '뮤직라이프'나 '영기타'에 이런 모습들이 많이 나왔기에 한층 인상깊게 남아있는지도 모르겠다.

 

- 그제 이 앨범을 다시 듣다가 "Falling In Love With You"는 기타의 디스토션만 빼면 시티팝이네? 하며 실없이 혼자 웃었다.